이벤트 / 행사

아카데미 요모조모 _ 레드카펫 문화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2. 24. 16:40
중세 유럽에서 붉은빛을 내는 천은 옷감 중에서도 가장 비쌌다고 합니다. 10kg의 모직물을 붉게 물들이려면 '케르메스(Kermes)'라는 곤충이 무려 14만 마리나 필요했기 때문이었죠, 붉은 천은 부와 권위를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붉은색은 권위와 높은 가치를 상징하게 되었으며 나아가 붉은 천으로 손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더 없는 환영이라는 의미가 생겨나게 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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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그리고 환영이라는 의미로 각종 영화제에서 널리 쓰이는 레드카펫은 이제 여배우들의 패션을 뽐내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카데미의 레드카펫이 유명한데, 아카데미 시상식에 깔리는 레드 카펫은 총 길이가 무려 500미터 이상에 달합니다. 코닥 극장 안에 깔린 레드 카펫의 길이만도 100미터가 넘는다고들 하지요. 무려 2시간여에 걸쳐 진행되는 행사로 화려하고 개성 넘치는 영화인들의 패션을 감상할 수 있는 좌석도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중요한 행사 중 하나라고 볼 수 있겠죠.

레드카펫은 첨단 유행의 전초전

레드카펫과 패션 업계와의 관계 또한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스타가 멋지게 차려입고 나온 옷에 주목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죠. 실제로 할리 베리가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녀가 입은 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는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으나 지금은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패션에 민감한 사람들은 스타의 패션과 '잇 백(It Bag)'에 주목할 수밖에 없죠. 전 세계 사람들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시청하는데다가 세계 전역의 신문과 잡지, 온라인 미디어 등에 레드 카펫 위에서의 이미지가 주는 파급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레드카펫 엔터테인먼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이죠.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레드카펫은 그저 사뿐히 즈르밟고 지나가는 용도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그것처럼 '행사'나 '식순' 같은 의미는 없어 보입니다. 아카데미와는 달리 동료와 여유롭게 거닐면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은 극히 보기 어렵습니다. 아카데미의 레드 카펫 행사는 2시간 넘게 진행되는 반면, 우리나라의 레드카펫은 상당히 빨리 끝나는 편이죠. 배우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드문 광경에 속하기도 하고요. 영화팬들을 위한 배려가 조금 아쉬운 대목입니다.

오히려 베니스 영화제는 지난 2002년부터 60미터의 레드 카펫을 없앴습니다.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은 배우와 감독을 배려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영화인들을 위해서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이제는 영화 시상식 하면 레드카펫이 떠오르니 그야말로 영화제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이번에 열리는 제80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레드카펫에서는 누가 주목받고, 누가 워스트 드레서에 뽑힐지 궁금해지는군요.